대전 초등생 살해 사건, 교사 신상 털이 시작… 사법 불신이 부른 폭발

대전의 한 초등학교에서 김하늘 양(8)을 살해한 혐의로 구속된 40대 교사 A 씨(48)의 신상 공개 여부를 두고 경찰이 고민하는 가운데, 온라인상에서는 이미 신상 털이가 시작됐다. 우리나라의 소극적인 신상 공개 방식과 사법 체계에 대한 불신이 이런 흐름을 부추긴 것으로 보인다.

16일 각종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A 씨가 특정 교육대학 출신이며, 95학번이라는 주장과 함께 "이혼한 전남편과 지난해 수능을 본 아들이 있다"는 글이 올라왔다. 또한 일부 네티즌들은 사건이 발생한 초등학교의 교사 명단과 교무실 전화번호까지 공유하며 A 씨의 신상을 추적하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이 같은 신상 추정의 근거는 피해자인 김하늘 양의 아버지가 취재진과의 인터뷰에서 "해당 교사는 48세 여성이고 아들이 이번에 수능을 봤다고 들었다"고 밝힌 내용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경찰의 공식 발표 없이 진행되는 무차별적인 신상 유포는 억울한 피해자를 낳을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누리꾼들은 "이제 신상 털이는 국민이 하는 거냐", "어차피 경찰은 안 까니까 우리가 알아야지", "근데 나중에 무고한 사람 신상 털린 거면 어쩌려고?" 등의 반응을 보이며 신상 공개에 대한 찬반이 엇갈리고 있다.


학교에서 벌어진 사건이라 더 분노… 신상 공개 가속화

특히 학교에서 벌어진 범죄는 일반적으로 사회적 공분이 극대화되는 특징이 있다. 학교는 아이들이 가장 안전해야 하는 공간이기 때문에 교사든 학부모든, 가해자로 지목된 이들의 신상은 유독 빠르게 확산되는 경향을 보인다.

실제로 지난해 서울 서이초 교사 사망 사건이 발생했을 때, 온라인에서는 특정 국회의원들이 갑질 학부모의 가족이라는 루머가 확산되며 마녀사냥이 벌어졌다. 또 같은 해 대전의 한 초등학교 교사가 극단적 선택을 했을 때도, 악성 민원을 넣은 학부모들의 신상이 폭로되는 일이 발생했다.

이번 사건 역시 초등학교에서 발생한 만큼, 네티즌들은 사법 체계를 신뢰하지 못하고 직접 신상을 공개하는 흐름을 보이고 있다. 그러나 이런 방식이 무고한 사람까지 피해를 입히는 사례로 이어질 수 있어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사법 불신이 부른 신상 털이"… 공적 제재 부족 탓

전문가들은 가해자의 신상을 유추하고 유포하는 배경에는 우리나라 사법 체계에 대한 깊은 불신이 자리 잡고 있다고 분석한다. 실제로 밀양 여중생 집단 성폭행 사건에서도 가해자들이 형법이 아닌 소년법을 적용받아 제대로 처벌되지 않은 전례가 있다. 이 사건을 계기로 "공적 제재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으니 사적 제재라도 해야 한다"는 분위기가 형성된 것이다.

이윤호 동국대 경찰행정학과 교수는 "공적 제재가 제대로 이뤄졌다면 사적 제재가 있을 리가 없다"며 "이번 사건의 경우 피해자가 8살 여자아이인데, 가해자는 병원에 입원 중이라는 이유로 구속조차 되지 않았다. 이런 상황이 불신을 키운 것"이라고 지적했다.

반면 미국과 일본에서는 피의자 이름을 공개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이에 대해 설동훈 전북대 사회학과 교수는 "사적 린치는 절대 해서는 안 되지만, 가해자의 신상 정보 공개를 사적 제재라고 봐야 하는지 고민해볼 필요가 있다"며 "미국은 명백한 범죄자의 경우 얼굴과 이름을 모두 공개한다. 우리나라 개인정보보호법이 너무 과도한 것은 아닌지 논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신상 털이의 부작용… 무고한 피해자 속출 우려

그러나 무분별한 신상 유포는 억울한 피해자를 양산할 수 있는 위험이 크다. 특히 가해자와 무관한 인물까지 연루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지난해 서이초 교사 사건 당시, 한 국회의원과 그의 가족이 가해자로 지목되며 신상이 퍼졌지만, 해당 의원의 손자·손녀는 해당 학교에 다닌 적이 없었고, 그의 자녀는 미혼이었다. 결국 해당 의원들은 허위사실 유포 및 명예훼손 혐의로 고소를 진행했다.

또한 개인정보보호법에 따르면, 가해자로 추정되는 인물의 신상을 유포하는 행위는 불법으로 간주되며, 정보통신망법상의 명예훼손 혐의로 처벌될 수도 있다.

이건수 백석대 경찰행정학과 교수는 "온라인 신상 털이는 급속도로 확산되기 때문에 가해자의 가족들까지 사회생활을 못 할 정도의 피해를 겪을 수 있다"며 "공적 절차를 통해 신상을 공개하는 것과, 불특정 다수가 SNS를 통해 퍼뜨리는 것은 완전히 다른 문제"라고 강조했다.